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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찰나의 맛’
회·구이·전·매운탕·포 등 어떻게 먹어도 맛 좋은 민어는 조선시대 수라상에도 올랐다. [사진 박상현]
7월의 제철 음식으로 민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초복을 열흘 남짓 앞두고 민어를 다루자니 괜한 걱정이 앞선다. 여름 복달임 음식의 ‘하이엔드’ 지위에 오른 민어는 한국장학재단 등록금 대출 지금부터 가격이 오른다. 초복을 기점으로 중복을 거쳐 말복에 이르기까지 그래프는 맹렬하게 우상향을 그린다. 이런 열기에 나까지 거들자니 살짝 겸연쩍다.
‘맛집의 옆집’은 의미가 있을까? 내 기준에는 전혀 의미 없다. 대중의 호기심을 끌기 위한 작위적 표현일 따름이다. ‘맛집’이라는 개념은 미디어와 SNS가 만든 허상이 2금융권 은행 다. 사람들은 허상 속에 있는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실에서 경험하는 일종의 판타지다. 판타지를 좇는 사람들에게 맛은 중요하지 않다. 판타지를 경험한 순간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랬을 때 누군가가 직관적으로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 맛집의 옆집 음식이 아무리 뛰어난들 이걸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맛집의 옆집’은 아무 의미 없는, 그냥 평범한 음 재학생대출 식점이다.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민어 뱃살. [사진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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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에 민어를 찾는 대중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민어 그 자체보다 언제 민어를 먹었는가 하는 ‘때’가 중요하다. 복달임으로 민어 정도는 먹어 줘야 미식가의 반열에 오른다는 강력한 믿음이 생겨버렸다. 그러니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먹어야 한다. 삼복 전에, 별내신도시 전세 혹은 지나서 먹는 민어는 ‘맛집의 옆집’만큼 심심하다. 따라서 이런 대중의 판타지를 인정하고 기왕지사 뻔한 소재를 선택한 김에 좀 더 뻔뻔하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민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반복해서 소개됐기 때문에 생략한다. 대신, 여름 민어 정복을 위한 실전 가이드를 제시할까 한다. 이른바 ‘미식가의 여름 민어 탐식기’다.
# 대물상회(서울 마포구) 상호가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물 생선에 대한 고집과 철학이 남다른 사장님 덕에 대기업 회장님들과 미식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집이다. 7년째 대물 생선만 다루다 보니 칼솜씨가 장인 반열에 올랐다. 전라남도 해역에서 낚시로 잡은 10㎏ 이상의 민어만 취급한다. 산지에서 하루 만에 공수되기 때문에 선어가 아닌 숙성 민어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설령 민어가 없어도 전혀 실망할 필요 없다. 참치도 참돔도 갯장어도, 오로지 대물만 취급하기 때문에 언제 가더라도 생선회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 신성일식(서울 종로구)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일식집이다. 명목상 ‘일식’을 표방할 뿐 메뉴 구성과 맛은 일찌감치 한국식 ‘접대용 횟집’의 전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여름 대표 메뉴도 민어탕이다. 횟감을 제외한 대물 민어의 뼈와 내장을 오래 고아낸 신성의 민어탕은 진한데 개운한, 모순적인 맛이다. 여느 생선은 낼 수 없는, 오직 민어라서 가능한 진국이며 더위에 지친 몸을 깨우는 보약이다. 밥 한술 말아 갈치김치를 곁들여 후루룩 흡입하면, 한양 사대문 안 양반들이 여름 복달임으로 왜 민어를 으뜸으로 쳤는지 절로 수긍이 간다.
보성 선씨 18대 손인 영홍공 종가에서 차려내던 책거리상 음식 중 가장 귀한 음식으로 꼽혔던 ‘민어부레순대’. [사진 박상현]
# 보성 선씨 선영홍 종가(충북 보은군) 보성 선씨의 18대 손인 영홍공은 ‘관선정’이라는 무료 교육기관을 열고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후학을 양성했다. 이런 내력 덕분에 선영홍 종가에는 지금까지도 책거리상의 전통이 남아있다. 스승께 감사하고 학동을 치하하기 위해 차린 책거리상에는 파강회, 새우전, 쇠고기 완자탕, 청포묵, 육회 등이 오른다. 이 가운데 가장 귀한 음식은 ‘민어부레순대’다. 민어 부레의 속을 새우와 민어 살을 다져 채운 다음 형태가 유지되도록 가마솥에 찐다. 그리고 이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350년 된 씨간장과 대추를 넣어 발효시킨 햇간장을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한국음식의 품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 음식을 맛본 이후로, 어떤 민어에도 흔들리지 않는 몸이 되었다.
# 목포 민어의 거리(전남 목포시) 민어가 산란을 위해 신안군 해역으로 몰린다면, 그 민어를 먹으려는 사람들은 목포 민어의 거리로 몰린다. 민어 애호가라면 한 번은 가봐야 할 일종의 성지다.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란횟집’을 비롯해 ‘중앙횟집’ ‘포도원횟집’ ‘유림’ 등 민어 전문점 일곱 곳이 모여 있다. 이왕 이 거리에 발을 디뎠다면 민어회, 민어껍질, 민어부레, 민어뼈다짐, 민어전, 민어초무침, 민어탕 등 ‘민어 7종’에 도전해보시길 권한다. 민어 좀 먹어봤다고 자랑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 전장포항에서 만날 수 있는 민어 건조 풍경. [사진 박상현]
# 임자도 전장포항(전남 신안군) 전남 신안군 임자도 전장포항은 새우젓의 본고장이다. 특히 음력 5월과 6월에 잡힌 새우로 담근 오젓과 육젓은 최고의 새우젓으로 꼽힌다. 민어가 임자도 일대를 산란지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젓새우 때문이다. 산란기 민어는 살이 오르고 알이 꽉 찬 젓새우를 먹고 영양을 보충한다.
한여름 전장포항에 가면 뜨거운 햇살과 해풍 속에 널어놓은 대물 민어를 만날 수 있다. 요즘은 민어 몸값이 올라 감히 엄두를 못 내지만, 조선시대에는 최고로 쳤던 말린 민어다. 말린 민어는 포를 떠서 먹거나 국을 끓여 먹던 민어 맛의 진수를 오롯이 품고 있다. 별도로 파는 물건은 아니지만, 동네 주민과 이야기만 잘 되면 거래도 가능하다. 설령 거래에 실패해도 상관없다. 민어의 본고장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름 민어 탐식기 종착지로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작성일 : 25-07-08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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